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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의 생애/생전자료

김복동 할머니의 국제활동 1992년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신고한 후 김복동할머니는 1992년 제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하고 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여 증언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스위스(유엔), 영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일본, 대만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활동했다.
수요시위 속 김복동 할머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김복동할머니는 수요시위의 가장 앞줄을 지켰다.
김복동 할머니의 젊은 시절 해방 후 김복동할머니의 젊은 시절
김복동 할머니께서 직접 그린 그림들
김복동 할머니께서 걸어 온 길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해요"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가 됨. 1945년, 싱가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당하여 일본군인들 간호노동, 버려짐.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 1947년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 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3월, 일본군‘위안부’ 피해 공개, 활동 시작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 증언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 실상을 문서로 증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