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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의 희망/활동소식

김복동희망학교 6강-재일동포와 여성



오늘 강의를 해주신 박일분 선생님은 조선신보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재일조선인 1세, 2세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특히 약 140명의 여성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연재물로 기록해왔는데요, 오늘은 그 인터뷰에서 만난 일부 여성들의 용기있고 투쟁어린 삶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 사례는 김길덕 할머님입니다. 1904년에 태어난 이 여성은 비록 여자에게 학문은 필요없다는 할머니의 반대로 학업도 포기해야 했지만 24살 일본으로 올 때 아버님께서 "일본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하라"는 편지를 전해주셨다 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의지가 이어졌던 것일까요. 그녀는 일본에서 생계가 어려운 때에도 도쿄조선 제5급 초중급학교를 세우기 위해 운동하고 여성동맹지부에서 활동하며 민족교육을 없애려는 일본정부의 탄압에 맞섰습니다. 그는 국기탄압사건 때 국기를 쌀통 속에 숨기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하며 줄기찬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다음은 고오생 할머님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고오생 할머니는 식민지배로 땅을 빼앗기고 기타큐슈의 탄광으로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와 후에는 오사카로 이동했습니다. 그는 집안의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면서도 총련 일꾼들을 위한 밥과 국, 반찬을 만들어 항상 식사를 대접했고, 여성동맹 지부부위원장이자 조선신보 분국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직접 몇백 호나 되는 동포들의 집으로 신문을 배달하기도 하며 열성적인 운동을 펼쳤다 합니다.

그리고 김경란 할머니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도쿄 에다가와에서 조선학교 건립을 위해, 그리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왔지요. 패전 후 하수시설이 없어 파리떼가 몰려다니고 공동변소의 물이 올라와도 소독액조차 제대로 나눠주지 않을만큼 노골적인 조선인 차별이 이뤄지던 당시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질기게 당국을 찾아가는가 하면, 그를 포함한 재일조선인들이 새 교사를 세우기 위해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흙을 부수며 땀 흘릴 때에도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조선학교가 경제고에 당면하자 종이, 병, 깡통 등을 모아 학교에 기부하는 등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록영화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량의헌 할머니가 식민지, 분단, 가족 이산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해녀로 물질해 가족들의 삶을 지켜낸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네 명 여성들의 삶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 식민지의 비극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만주사변을 전후해 가장 비참한 시기 일본으로 건너왔던 이 여성들의 삶을 세계적인 불황과 식민지 종속경제라는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면서 마주하면 얼마나 큰 용기와 기개를 가지고 삶을 개척하며 투쟁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역사와 사회가 잘 기억하지 않았던 재일동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궁금하시다고요? 아쉽게도 박일분 선생님의 책들은 일본어로만 출간되어 있는데요. 그래도 필요하실 분들을 위해 곧 책 목록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다음주면 약 두 달 동안 매주 금요일을 함께했던 제1기 김복동희망학교가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강의까지 완주하며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로 함께 가요!

- 8월 2일 : 7강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 (박창일 평화3000 운영위원장) 및 종강식
장소 : 광화문 변호사회관 10층 조영래홀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160번지. 광화문역 8번 출구 300미터)

문의 010-9893-1926, hope_bokd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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