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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의 희망/활동소식

김복동희망학교 1강-김복동의 삶을 만나다



김복동희망학교가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조영래 인권변호사를 기리는 조영래홀을 장소 후원해주어 깨끗하고 편리한 장소에서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희망학교 사회는 오랫동안 김복동 할머니와 활동가들의 동지로, 후원자로 함께해 온 홍인기 선생님이 맡아 수고해주었습니다. 이태희 김복동의희망 공동대표와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활짝 문을 연 오늘의 강의 현장 소식을 전합니다.

첫 강의는 김복동 활동가와 가장 가까이에서 투쟁하며 동고동락해 온 윤미향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가 준비했습니다. 약 삼십년간 만나왔던 인간 김복동, 여성 김복동, 활동가 김복동의 삶을 다루면서 일본군'위안부'운동을 비롯해 평화, 여성인권, 그리고 식민지 문제는 물론 약자들과 연대하는 과정을 풀어냈습니다.

윤미향대표는 김복동 활동가가 첫 번째 공개증언을 할 때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눈물 흘리면서도, 일본 정부에 문제제기를 할 때 당당한 목소리를 냈었다 합니다. 그리고 1992년 아시아연대회의를 거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요.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으로, 오스트리아로, 미국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당사자들의 가열 찬 운동은 지속되었지만,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낙담'을 하기도 하고, 쉼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제 2의 활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잘 안보이던 눈을 치료하고,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활동이 시작된거죠. 김복동 활동가는 수요시위에 참여한 해고노동자들에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복동 활동가의 연대는 일본의 지진피해, 세월호, 그리고 전시성폭력피해자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윤미향 대표는 "누구의 입장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과제 앞에서, 김복동 활동가는 "고난 받는 이"의 자리에서 활동했다 평가합니다.

김복동 활동가의 힘찬 활동에도, 결국 2015년 한일합의가 터졌습니다. 김복동 활동가는 2015한일합의의 불합리를 알리기 위해 유엔, 미국, 유럽,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던 와중 김복동 활동가에게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김복동 활동가는 조선학교 지원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김복동의 희망>이 탄생했습니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0시 41분, 한 사람, 바로 김복동 운동가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김복동의 유지를 잇기 위한 열 명, 백 명, 천 명(이상)이 그에게 인사를 보냈습니다. 김복동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렴풋하던 희망의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윤미향 대표의 말처럼 희망은 바로 사람이기에 오늘도 그런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수강생들은 윤미향 대표가 변함없이 할머니와 함께 달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곧 개봉할 다큐영화 김복동 상영은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함께하면 좋을지를 묻기도 했고, 길원옥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개강식이니만큼 단체사진도 한 컷!

여러분들도 김복동할머니가 꿈꾼 한 사람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주 금요일인 6월 21일에 있을 두 번째 강의로 초대합니다. 혹시 미리 신청을 못하셨더라도 지금 신청하시면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 강의는 <분단과 재일동포>를 주제로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가 여러분을 만납니다.

- 6월 21일 저녁 7시 : 2강 분단과 재일동포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
장소 : 광화문 변호사회관 10층 조영래홀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160번지. 광화문역 8번 출구 300미터)

문의 010-9893-1926, hope_bokdong@naver.com